#슨른전력_60분 / 230819 뎀슨

연성2023. 8. 19. 23:42
#슨른전력_60분
[뱀파이어 / 인어]
해적 데미안 x 인어 제이슨
(+약간의 브루슨)
[원본 링크]

 

 데미안은 갑판 위에 서서 양손으로 낡은 양피지를 펼쳤다. 양피지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데미안의 배는 곧 어느 무인도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도 양피지의 내용과 일치했다. 날씨는 매우 화창하고, 바람도 선선하게 무인도가 있는 남쪽을 향해 불고, 파도도 잠잠하다.

 

 "보물을 찾기에 아주 제격이군." 데미안은 씨익 웃었다. 아버지가 남긴 유산을 차지할 날이 머지 않았다.


 현 고담의 영주인 브루스 웨인은 과거, 해적으로서 한창 이름을 날렸었다. 해적 생활을 하면서 건진 재화들은 대부분 항구도시 고담의 재건축 및 시민들의 복지를 늘리는 쪽으로 소모되었으나 몇몇 아주 희귀한, 값어치를 매길 수 없을 정도로 진귀한 보물들은 아주 은밀한 장소에다 숨겨놓았다. 그리고 보물을 숨긴 장소를 적은 양피지들은 브루스의 최측근이 아니라면, 최측근이라도 아주 기발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찾아낼 수 없도록 치밀하게 숨겨놓았다.

 

 데미안 또한 브루스의 보물을 노리는 야망 있는 견습 해적이었다. 브루스도 해적이었지만, 그의 모친인 탈리아 알 굴 또한 전세계적으로 악명을 떨친 해적 중 한 명이었다. 브루스에게 맡겨지기 전, 탈리아에게 해적담을 들은 데미안이었던 것이다. 브루스의 고담 영주 자리를 물려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데미안은 배를 타고 세계 곳곳을 누비며 제 명성을 널리 떨치고 싶었다. 하지만 브루스는 위험한 짓은 그만두고 얌전히 경영학이나 배우라며 그를 타일렀다. 탈리아 또한 먼저 막강한 군사력을 얻는 게 먼저라고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정 안된다면 해적질을 하며 부하를 모으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등 의도를 알 수 없는 조언을 해주었다.

 '보물이라도 찾아온다면, 네 노력과 진심을 받아들일 수 있을 지도 모르겠구나.' 흘리듯 말한 브루스의 말은 데미안이 보물지도에 집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물지도 중 하나를 발견한 건 정말 우연이었다. 지도를 찾기 위해 저택의 서재를 전부 뒤졌던 날이었다. 하도 몸을 움직였더니 달달한 간식이 먹고 싶어서 부엌을 뒤졌는데, 그날따라 집사가 미리 구워놓은 쿠키가 전부 동나있었다. 데미안 알 굴-웨인, 비록 할 줄 아는 건 칼로 사람을 썰어대는 것 뿐이었으나 이런 간단한 칼질 및 반죽은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부엌 찬장 구석에 박혀 있는 집사의 제빵책, 133p~140p, 크랜베리 화이트 초코칩 레시피를 펼쳐놓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사실을 발견했다. 해당 페이지 6장을 겹쳐놓고 뒤에 불빛을 비추면 신기하게도 무언가를 가리키는 지도가 된다는 사실을. (어째서 쿠키 반죽을 하다 말고 종이책을 불빛에 비춰볼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는 묻지 말자.)

 

 "설마 여기에 보물지도가 숨겨져 있을 줄은... 정말이지, 아버지, 아무도 못 찾게 교묘하게 숨겨놨네."

 "보물지도라, 저도 오랜만에 보는군요."

 "페니워스는 이 지도를 알고 있었어?"

 "아뇨, 저조차도 처음 봅니다. 하지만 주인님께서 지도를 찾은 분께 전달하라고 했던 명령은 기억하고 있죠."

 

 집사는 데미안을 저택 지하의, 인근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동굴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작은 배 하나가 정박해있었다. 낡아빠진 배라고 생각했는데 가까이 가보니 정기적인 점검을 받아 상태가 양호한 배였다. 데미안이 찾아낸 작은 무인도까지 갈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연료와 항해동안 버틸 수 있는 식량까지. 전부 언제든지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었다.

 

 "키를 잡는 법은 기억하고 계시죠?"

 "tt, 당연하지. 난 뭐든지 빨리, 완벽하게 배운다고."

 "이건 주인님께서 사용하시던 나침반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도련님께서 보물을 찾아 항해하러 갈 일이 생기면 반드시 전해주라 하셨지요. 이 나침반이 도련님의 항해를 도와줄 겁니다."

 "이딴 나침반이?"

 "물론이죠. 이 나침반 덕분에, 브루스 주인님이 많은 고비를 넘기셨죠."

 

 데미안은 빛바랜 나침반을 바라보았다. 브루스는 결국 데미안이 보물지도를 찾아내고, 보물을 찾아 갈 걸 알고 있었을까? 그리고 브루스를 이어 데미안을 보호할 수 있도록 넘겨준 것인가? 그는 나침반을 한번 세게 쥐고나서 주머니에 넣었다.

 

 "해적으로서의 첫 항해시군요. 그럼 보물을 찾아 이곳으로 무사귀환하시길, 무운을 빌겠습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항해는 정말 순탄치 않았다. 거리상으론 고담 항구와 그리 멀지 않아 보였는데, 암초지대를 통과해야해서 배가 부딪치지 않도록 신중하게 키를 조정해야 했고, 날씨가 난데없이 바뀌어 갑작스런 폭풍우와 마주친 적도 있었다. 초심자의 행운인지, 아니면 정말 나침반에 무슨 능력이 있었는지 다행히 큰 피해 없이 무사히 고난을 넘기고 무인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도착했는데.. 바로 금은보화가 보일거라고 생각은 안했지만, 이렇게 돌과 바위밖에 없는 척박한 곳이라고도 생각치 못했다. 보물을 챙겨 의기양양하게 돌아갈거란 자만심이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이곳은 나무 몇 그루가 달라붙은, 그냥 거대한 돌바위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설마 위치를 착각했나 싶어 황급히 나침반과 양피지를 꺼내 거리와 방향을 재검토했다. 몇 번이고 살폈지만 보물지도가 가리키는 곳은 이 돌섬이 맞았다.

 

 그래도 땅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배에서 내려 무작정 섬의 중심을 향해 걸었다. 신기하게도 무인도에 발을 내딛자 갑자기 나침반이 미친듯이 빙빙 회전했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방향을 향해 뚝, 멈췄다. 보물을 감지하고 보물이 있는 방향으로 안내하는 걸까? 데미안은 망설임없이 나침반이 보여주는 방향대로 이동했다.

 

 나침반은 데미안을 섬의 중앙으로 이끌었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품고 도착한 그곳에는 낯선 생물이 있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일광욕을 즐기는 이상한 생물. 상체는 데미안에게 익숙한 인간의 생김새였으나, 하체는 물고기와 닮아있었다. 공격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리에 우뚝 서서 그것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아주 작은 움직임은 곤히 잘 자던 생명체를 깨우기에 충분했다.

 

 "...브, 브루스..?"

 "뭐?"

 

 남성톤이지만 미묘하게 중성적인 느낌이 났다. 생물이 몸을 일으켰다.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풍만한 가슴과 숨을 쉴 때마다 움직이는 두툼한 근육에 저도 모르게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눈을 감아도 선명하게 보이는 선홍색 비늘과 붉은 빛의 지느러미, 거기다가 바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저 청록빛 눈동자, 인간의 동그란 동공과 다른 세로 동공. 눈빛만으로도 홀린다는 게 이런 느낌이었을까.

 데미안은 문득 자신이 숨을 쉬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급하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저렇게 생긴 생물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디였지? 뭐였지?

 데미안은 고개를 휙휙 저으며 정신을 차리고 저 낯선 생물이 한 말에 집중했다. 어디서 봤던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인간의 언어로 말을 한 것도 눈여겨봐야할 부분이었지만, 분홍빛 입술이 오물거리면서 튀어나온 내용이 더 충격적이었다.

 

 "브루스, 라니, 네가 내 아버지의 이름을 어떻게 알지?"

 "....?"

 "설마 네가, 아버지가 말한 보물이야?"

 "...브루스."

 

 아버지,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데미안은 진심으로 브루스의 멱살을 잡고 묻고 싶어졌다.


 그래, 인어. 데미안이 보고 있는 저 생물은 인어라고 불렸다. 저택 서고에서 본 적이 있다. 브루스가 해적으로 바다를 탐험하는 동안 보고 만난 신기한 생물 사전, 같은 느낌으로 만든 책에 딱 저런 생김새의 인어를 본 적이 있었다. '설마 그 책에 그려진 그 생명체는 아니겠지.' 그림과 함께 무어라 부연 설명이 적혀 있었는데,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다면 책도 가져올 걸 그랬다. 물론 그땐 이런 생명체를 마주할 줄 몰랐으니까.

 

 일단 데미안은 오로지 '브루스'라고 말하는 인어는 내버려두고 섬 곳곳을 탐사했다. 인어 말고 브루스가 숨겨놓은 보물이 필시 있을거라 생각했다. 삽을 들고 와 맨땅을 계속 파헤쳤다. 아무것도 없었다. 이곳에 자생하는 식물이 귀한 품종인가 싶어 식물 하나하나 살폈지만 그냥 고담 해변가에 널려 있는 잡초였다.

 

 해변 근처, 하다못해 바닷속에 뭐라도 숨겨져 있을까 싶어 직접 수영해서 섬을 여러 번 왕복해 둘러봤지만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오히려 갑자기 수영하러 뛰어든 데미안을 보고 인어도 무슨 생각인지 같이 뛰어들어 헤엄치는 바람에 탐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바닷속에서 보는 인어는 뭍에서 봤을 때보다 더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어째 바닷속으로 들어오니 인어의 피부가 더 반짝이는 것 같았다. 인어는 입모양으로 뭐라뭐라 하더니, 갑자기 아래로 훅 내려가버렸다. 설마 이대로 보물인 인어마저 놓쳐버리는건가 싶었는데 어디선가 해초로 만든 목걸이 비슷한 걸 가져와 데미안의 목에 걸었다. 그리고는 자신의 작품이 마음에 들었는지 씩, 웃는데 그 얼굴에 반해 하마터면 또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릴 뻔 했다.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이대로 바닷속에 빠져 죽을 뻔 했는데, 인어가 데미안을 안고 해변까지 데리고 와 주었다. 인어의 품은 따듯하진 않았지만 말랑말랑하고 촉촉해서 꽤 괜찮았다. 품에 멍하니 있으니 인어가 계속 데미안에게 '브루스'말고 어떤 말을 계속 걸었다. 아무래도 인어의 말같았는데 인간인 데미안은 그 말을 들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어서 차라리 '브루스'라고 말하라고 투덜거렸다. 인어는 데미안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환히 웃으며 '브루스!'라고 외쳤다. 젠장.

 

 공격적인 태도를 갖고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거와 달리, 인어는 데미안이 들고 있는 나침반을 보고난 후 데미안에게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데미안을 보며 뭔가 자기가 알던 모습이 아닌지 계속 고개를 위아래로 올렸다 내렸다를 반복했다. 말은 '브루스' 단어 하나밖에 못하는 듯 했지만 표정이 풍부한지라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측이 가능했다. 가령 지금 같은 행동은,

 

 "'브루스'와 닮았는데 '브루스'보다 작아서 의아하다, 정도겠군. 이봐, 잘 들어. 난 브루스 웨인과 탈리아 알 굴의 친자 데미안 알 굴-웨인이다. 장차 널 포함해 아버지의 보물을 모두 모아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칠 위인이지."

 "..브-,"

 "아직 성장기야!"

 

 어째 인어의 기세에 눌린 느낌이라 데미안은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고, 인어는 그 모습마저 웃긴지 소리 없이 웃었다. 데미안은 그 모습을 보고 따라 웃을 수 없었다. 브루스에 비해 덩치가 작다고 놀림 받아서 욱해있던 것도 있지만, 맑게 웃던 그 모습이 정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너무나 아름다워서, 압도당했다는 쪽이 더 올바른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인어가 말을 알아듣는지는 알 수 없었다. 데미안은 아주 조용히, 인어에게 중얼거렸다. "좋아한다." 고. 이 감정이 좋아한다는 건지 어쩐건지 확실치는 않지만 그 순간 그 말을 꼭 해야할 거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데미안의 목소리륻 들은 인어는 그 말을 이해한건지, 이해하지 못한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데미안을 바라보았다.


 브루스 웨인이 남긴 보물은 인어다. 그것도 브루스의 이름만을 읊조리는 인어. 결국 데미안은 현실을 인정했다. 가치를 매길 수 없는 희귀한 존재이니 브루스가 숨길 정도의 보물이 맞다. 분명 데미안의 야망을 위해 보물을 찾아 나선 건데, 이 인어를 고담으로 데려가면 브루스에게 더 좋은 게 아닌가 걱정했다. 어쩌면 항해 중 다른 인어를 만나 이런 식으로 길들여보라는 브루스의 메시지같은 건가, 라는 방향으로 해석해봤다. 하지만 데미안은 지금 보고 있는 이 인어가 가장 좋았다. 다른 인어를 만나더라도 이 녀석보다 더 아름다운 인어는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빌어먹게도, 브루스의 심미안은 데미안에게도 일맥상통했다. 어쩌면 아버지의 것을 빼앗고 싶은 욕망이 눈을 뜬 것일지도 모른다.

 

 인어를 어떻게 배에 태우고 고담으로 돌아갈지 고민이 많았는데, 의외로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인어는 데미안의 배를 따라 알아서 헤엄쳐왔다. 가끔은 꼬리로 배를 쳐댔는데, 그러면 배에 설치되어 있는 도르레를 이용해서 인어를 끌어올려 배에 태워 잠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해줬다.

 

 인어는 노련하게 갑판 위에서 햇빛이 가장 잘 드는 위치에 누워 한동안 햇빛을 쬐다 갔고, 데미안은 그동안 멀리서 인어를 힐긋힐긋 훔쳐보며 몰래 양피지 뒷면에다 인어를 그렸다. 인어의 얼굴부터 해서, 유독 탐스러웠던 상체도 강조해서 그리고, 하체는 저택에 돌아가서 채색까지 할 요량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인어는 일광욕을 좋아한다고 메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인어에게 '브루스'라는 말을 가르친 건 분명 데미안의 아버지일터다. 어째서 자신의 이름을 말하도록 시켰을까? 브루스가 그렇게 했다면, 데미안 또한 인어에게 '데미안'이라고 부르도록 시킬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어 데미안은 인어에게 다가가 자신을 가리키며 '데미안'이라고 반복적으로 말을 했다. 결과는 '브루스'였다. 인어에게 새로운 말을 가르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해냈으니 나 또한 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일단 '브루스'라는 단어를 잊어버리게 하고, '데미안', '좋아해' 정도를 가르쳐봐야겠다.

 

 가끔 인어는 물 속에 들어가서 한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럴때마다 데미안은 이번에야말로 진짜 인어가 도망쳤나 싶어 난간을 붙잡고 한동안 새파란 바다속을 응시했다. 그러다 한 두 시간이 지나면 인어가 양 손에 물고기나 상어를 붙잡은 채로 꼬리지느러미로 능숙하게 배를 탁탁 치며 데미안을 호출했다. 인어는 생선을 먹는다. (쓰고나니 당연하다.) 맨손으로 상어도 잡는 듯 하다. 인어는 바닷속 최상위 포식자인가?

 

 잠이 잘 오지 않는 밤에, 밖에 나와보면 인어가 달을 보며 무언가 멜로디를 흥얼거릴 때가 있었다. 인어의 언어로 말하는 듯 했지만 어째선지 어딘가 낯익은 느낌이 들었다. 데미안이 인어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인어는 데미안을 껴안고 부모가 아이를 재우듯이 등을 토닥였다. 인어의 노래는 언젠가 들어본, 자장가와 닮았다.

 

 그렇게 양피지 6장을 전부 인어로 가득 채워놓았을 때 즈음, 웨인 저택의 비밀 동굴에 도착했다.


 집사는 물 속에서 빼꼼 고개를 들고 주변을 경계하는 인어를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친근하게 "오랜만입니다, 제이슨 님." 하고 인사를 했다. 인어 또한 집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역시, 이 보물지도의 주인공은 제이슨 님이셨군요."

 "제이슨? 저 인어의 이름이 제이슨이야?"

 "그렇습니다. 브루스 주인님이 처음으로 소유한 '보물'이시죠. 제가 만든 걸 다 좋아했지만, 브루스 주인님처럼 쿠키를 참 좋아하셨어요. 그래서 레시피에 지도를 그려넣으신 걸지도 모르겠군요."

 "tt, 역시 넌 내가 뭘 가져올지 알고 있었어."

 "저 또한 주인님과 같은 해적이었으니까요. 아, 나침반은 돌려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제 데미안 도련님의 것이니까요."

 

 제이슨이란 이름은 누가 붙여준 건지 몹시 궁금해졌다. 역시 아버지가 붙인 이름일까? 데미안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집사가 말을 이었다. 제이슨이라는 이름은 인어의 본명이라고 했다. 우연찮게 인어말을 할 줄 아는 학자를 만나 통역을 한 결과, 인어 이름을 우리가 발음할 수 있는 언어로 치환하면 '제이슨 토드'라고 부른다고 전했다. 그리고 그때 브루스는 통역사의 힘을 빌어 인간의 말을 할 수 없는 인어에게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 '브루스'라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첫 보물을 얻으신 소감이 어떻습니까? 데미안 도련님."

 "저건 내 것이 아냐, 아버지의 물건이잖아."

 "그렇지 않습니다. 인어는 제 주인을 직접 선택해요. 주인님께선 그저 인어가 지내는 장소를 알려줬을 뿐입니다."

 

 제이슨과 브루스는 모종의 일을 겪고 함께 항해를 떠났고, 브루스가 고담으로 돌아가길 결정하고 나서는 헤어져 그 이후로 만날 수 없었다고 한다. 브루스가 지도를 들고 여러 차례 인어섬을 방문했지만 무슨 일에선지 인어를 만날 수 없었다고. 그러니까 인어는 데미안이 올 걸 알고, 미리 나와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뜻이 된다.

 

 "어떻게.. 제이슨이 내가 올 줄 알았다는 거야?"

 "인어는 그 자체로도 희귀하고, 공기에 노출되면 보석이 되는 아름다운 눈물도 갖고 있지만, 가장 대단한 능력은 예지라고 합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바다 날씨에 대응하기 위해 그렇게 진화했다고들 하죠. 그렇기에 모두가 인어를 노리지만 절대 강제로 붙잡히는 적이 없죠. 아마 제이슨 님께서는 데미안 도련님의 훌륭한 재능을 알아보고 기다리고 있으셨던 게 아닐까요?"

 

 제이슨은 해적을 포기하고 안정적인 삶을 선택한 브루스에게 실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해적의 꿈을 품고 있는 데미안에게 가능성을 걸고 기다렸던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냥 단순하게 브루스에게 실망했을지도 모르지. 그건 인어의 말을 직접 배워서 본인에게 물어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었다.

 데미안의 목표가 하나 더 생겼다. 브루스가 만났다던 인어학자를 만나 말을 배워야겠다고. 저번에는 감정이 확실치 않아 서투르게 말했지만 이번에는 진심을 담아 전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데미안은 제이슨을 힐끔 쳐다보았다. 제이슨은 어느새 갑판 위로 홀로 올라가 데미안의 메모를 하나씩 살펴보고 있었다. 인어가 글은 못 읽을 테지만, 거기에 그려진 그림은 누구인지 알겠지! 그 생각이 들자 부끄럽고 놀란 마음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제이슨은 데미안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었다. 한 손에는 양피지뭉치가 쥐어진 채였다. 그러고는 그림과 저를 번갈아 가리키며 하하 웃었다.

 

 물에 젖어 잉크로 그려진 그림 대부분이 지워져버렸다. 브루스가 남긴 지도또한 절반 이상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 이제 인어가 스스로 사라진다면, 데미안이 그를 찾아갈 방법이 없었다. 인어가 도망치지 못하게 어디 가둬두던가 해야지.

 

 "어쨌거나 그림이 꽤 마음에 들게 나왔는데, 아쉽게 되었군."

 

 그러다가 양피지 구석에, 뭔가 손톱으로 꾹꾹 누른 듯한 흔적을 발견했다. 데미안은 양피지를 들어 자세히 바라보았다. 뭔가, 모양이, 마치, ...하트 모양을 연상시켰다. 양피지에는 브루스의 필기와 데미안의 그림 외에 다른 흔적은 없었다. 그렇다면 이건 인어가 남긴 표식인 게 틀림없었다. 하트, 하트라니. 이런 귀엽고 깜찍한 짓을. 데미안은 양피지를 들고 혼자 피식 웃었다. 브루스는 인어를 위해 그를 놓아주었지만, 데미안은 인어를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손아귀에 알아서 들어온 인어가 도망치지 못하게, 아주 섬세하게 그물을 놓아 본인이 잡혔는지도 모르게, 스스로가 선택해서 옆에 남은 것처럼 생각하게끔 해야겠다.

 데미안의 첫번째 보물은 그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