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반팀슨/ 센티넬가이드 AU
연성2022. 5. 25. 14:43쿠님과의 연성교환용 연반팀슨^//^
(경고: 발작 증상 묘사가 있습니다.)
원본 썰
팀은 제 품에 달려드는 아이를 껴안고 힘껏 안았다. 코 끝에 맴돌던 역한 비린내 대신 제이슨의 포근한 체향이 맡아졌다. 폭주하기 일보직전이던 신체 기능들이 점차 정상 수치로 가라앉았다. 그렇게 한동안 꿈쩍도 않고 포옹하고 있었더니 아이가 불편함을 느꼈는지 바르작거렸다. 센티넬 현상은 진정된지 오래지만 제이슨의 가이딩이 너무 달콤하고 현혹스러워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더 껴안고 있다가는 제이슨이 불편해할테니 힘을 살살 풀었다. 제이슨은 팀이 놔주자마자 몸을 뒤척이더니 이내 편안한 자세를 찾고서 한결 풀어진 표정을 짓고 팀에게 기댔다.
이 세상에는 센티넬 증후군이란 게 존재한다. 마치 도핑이라도 한 것처럼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난 능력치를 갖고 있으나 그만큼 신체적 부담이 몇 십배 커 대부분 약물에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지칭한다. 불규칙적인 편두통부터 시작해서 일상생활마저 불가능할 정도로 극심한 고통까지 부작용의 정도가 제각기 다르긴 했다. 이를 완화시킬 수 있는 건 센티넬 전용 가이드 약물과 가이드라 불리는 사람뿐이다. 가이딩, 센티넬 증후군 보유자의 폭주를 억누를 수 있는 필수불가결한 행위. 만일 장기간 가이딩 약물을 복용하지 않거나 가이딩을 받지 않는다면 센티넬은 폭주라 불리는 센티넬 특유의 특수반응과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최근에는 가이드와 가이드 약물, 센티넬의 관계에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특히 가이드 약물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으로서 행해지는 가이딩은 진정 효과가 너무나 뛰어난 탓에 센티넬에게 마약과 같은 중독성을 불러 일으키고 있어 연구와 사례조사가 필요했다. 그렇게 가이드끼리의 가이딩 효과 차이가 있는지, 가이드의 기준은 무엇인지, 가이드라고 해서 센티넬에게 무조건 가이딩이 되는 건 아니던데 이유가 무엇인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관련 논문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요즘 팀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건 팀과 제이슨 둘 다 자경단원으로서 필연적으로 생각 할 수 밖에 없는 주제, '가이딩을 받던 센티넬이, 가이드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되는가' 였다. 그리고 이 주제에 관한 논문이 나왔는데 그 내용이..........
"나 팀이 없으면 어떻게 살지?"
"갑자기 그런 생각은 왜 했어, 제이? 또 데미안이 뭐라 했어?"
"아니이, 그냥, 내가 가이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만나지 않았을 거 같아서."
"제이... 난 네가 가이드여서 사랑하는 게 아니야. 제이슨 토드를 사랑하는 거지. 우리의 인연이 조금 뒤로 미뤄졌을 순 있었겠지만, 그래도 난 널 항상 찾아냈을거야."
"팀..."
그런데 왜 그 낯선 곳에 홀로 죽도록 내버려뒀어? 항상 믿고 있었는데. 온다고 했잖아. 온기 대신 얼어 죽을 것 같은 한기가 느껴졌다. 제이슨의 피부에는 생기 대신 시체 특유의 탁한 청색이 돌았다. 고개를 돌려 팀을 바라본 제이슨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었더라. 팀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온 몸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일어났냐. 반응 보니 아직 살아있군."
"데미안."
"사무실 바닥에 쓰러져 발작하던 널 루시우스가 데리고 왔어. 아직 약물이 통해서 다행이지, 안그러면 죽었을 거다. 이번달만 들어서 벌써 3번째다. 너 이러다 죽어, 드레이크."
"그냥 내버려두지 그랬어."
"너 쉽게 죽는 꼴은 절대 못봐."
데미안의 대답에 팀은 피식 웃고 침대에서 일어나서 나가려 했지만,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다시 의료용 간의 침대에 드러누웠다. 누우니 머릿속이 미친듯이 회전했다. 뇌가 머릿속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느낌이었다. 꿈에서 제이슨의 가이딩을 받았는데, 지금은 그게 무슨 느낌이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그런 내용의 꿈을 꾸긴 꿨나. 가만히 누워만 있는데도 땀이 미친듯이 났다. 속이 메쓰껍다. 당장 구역질을 하고 싶은데 몸을 일으킬 힘도 없다. 호흡이 거칠어지고, 눈 앞이 흐려졌다. 데미안은 인상을 찌푸리고 팀의 팔에 꽂혀있는 링겔을 조작해 약물 주입량을 늘렸다. 얼마 안 있어 상태가 점차 호전되었다.
"얼마나 기절해있었지?"
"사흘하고도 4시간. 당분간 저택에서 요양하라는 알프레드의 명령이다."
"젠장, 그럴 때 아닌 거 알잖아."
"닥치고 누워있어. 링겔 바늘 뽑기만 해라, 아주 누워서 숨만 쉬도록 해줄테니."
"..이미 절반은 비슷한 상태인데."
"거기다 이미 전부 인수인계 끝났어. 뭐라도 하고 싶으면 오라클한테 가서 돕고 싶다고 빌던지 해. 심심하면 네가 기절해있는 동안 레드후드 파일 업데이트 해놨으니 읽기나 하던가."
데미안은 화면을 조작해 모니터에 레드후드의 파일을 띄우고 케이브에서 나갔다. 케이브에는 팀 뿐이었다. 팀은 눈을 감고 몸에 약물이 퍼지기를 기다렸다가 한참 뒤에 조심스레 일어나 컴퓨터를 조작했다. 신원 미상의 일반인. 요즘 데미안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신흥 빌런이었다. 고담 전역의 불법 마약 및 가이딩 약물 조직들을 한데 모으더니 자기 휘하에 두고, 그때문에 밀매단에 막대한 권력을 휘두르던 블랙 마스크랑 경쟁하면서 동시에 배트맨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만 골라서 하는 이상한 녀석이었다. 새빨간 라이더헬멧을 쓰고 있어 임시로 레드후드라 이름을 붙여줬는데 그게 나쁘지 않았던지 배트맨에게 보내는 예고장에 RH라는 이니셜을 적기도 했다. 레드후드, 조커의 옛 별명이기도 했지.
가장 최근 업데이트된 항목을 보면.... 데미안을 상대로 어느정도 비등비등 싸우다가 용케 도망쳤다. 아무리 데미안이 전성기 브루스보다 실력이 아래라고 하지만, 리그 오브 어쌔신의 암살기술을 비롯한 다양한 무술을 구사할 수 있는 천재 무술가다. 그와 싸워 비기는 것도, 도망친 것도 예사롭지 않다. 더군다나 데미안이 아래에 첨언을 해놓기를, 특히 리그에서 쓰던 움직임이 많이 보였다고 했다. 데미안을 죽이려고 탈리아가 보낸 암살자라도 되나? 당장 현장으로 가서 헬멧 아래 인물을 추측해볼 만한 단서를 찾아보고 싶은데 몸이 성치 않아 그러지 못하는게 못내 아쉬웠다.
아쉽다고 했지 하지 않을거라고는 안했다. 팀은 후드의 마지막 발견 위치에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가동이 중단된지 한참 지난 낡은 공장 근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후드가 타고 도망친 오토바이 타이어 자국만이 이곳에서 접점이 있었구나라는 걸 유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데미안은 당연히 오토바이를 좇았겠고, 당연히 오토바이에선 아무 증거도 찾아낼 수 없었다. 대담하고 치밀하다. 배트맨의 행동 방식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데미안의 골머리를 썩히는 녀석의 존재가 궁금했지만 팀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이 낡은 공장에서부터 위로 쭉 올라가면 아캄 어사일럼이 나온다. 그곳에는 제이슨 토드, 3대 로빈을 납치하고 폭탄을 터트려 죽인 살인범 조커가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지내고 있었다.
제이슨이 갇힌 창고가 순식간에 활활 타오르는 불길에 휩싸였던 게 생생히 기억났다. 팀은 제이슨을 눈 앞에서 놓쳤다. 그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고 그건 곧 몸에 극심한 고통이 되어 무려 3개월동안 혼수상태에 빠졌다. 몸이 겨우 가이드 약물을 받아들이며 정신을 차린 후에는 이미 모든 것이 정리되어 있었다. 제이슨의 장례식이 끝나고, 무덤에 묻히고, 조커를 '죽기 직전까지' 후드려 패고 정신병원에 감금시켰다. 팀이 할 수 있는 일은 성치 못한 몸을 이끌고 제이슨 토드의 무덤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는 일 뿐이었다.
팀은 예전에 읽었던 논문 내용을 떠올렸다. 가이드를 잃은 센티넬은 어떻게 되는가? 가이딩 약물로 고통을 줄일 순 있지만 가이드에게 중독된 센티넬은 예전만큼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정확히는 가이드 약물에 내성이 생겨서 예전만큼의 효율을 발휘할 수 없었다. 몸의 부담은 점점 심해져 결국 다른 사람들보다 빨리 죽을 것이다. 파장이 비슷한 가이드를 찾거나, 죽거나. 그는 다른 논문을 찾아보았다. 비슷한 내용이었다. 가이드의 가이딩만큼 효과가 빠른 가이딩 약물을 개발했지만 부작용이 너무나 많았다. 희망찬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이미 죽은 아이를 위해서, 죽어가는 센티넬이 할 수 있는 일이 딱 한 가지 있었다. 죽은 아이를 위해서 라는 말은 사실 아무 상관 없고 살아있는 사람의 과욕일지도 모르지만, 어쨌거나 제이슨을 잃은 팀 드레이크가 할 수 있는-해야만 하는 일이 하나 있었다. 조커를 죽이는 것. 팀은 제 능력을 전부 다 끌어모아 아무도 모르게, 완전범죄로 조커를 죽일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브루스나 데미안, 알프레드마저 알아차리지 못하게 그들이 아는 팀을 연기하며 작전을 실행해나갔다. 그리고 지금, 마지막 단계를 제외하고 전부 마무리가 되었다. 점점 기절하는 일이 잦아지고, 장이 망가져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종종 호흡하기가 힘들어졌지만 그건 조커가 곧 죽을 시간이 다가온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 사실을 떠올리면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팀이 아무리 몸이 성치않다 해도, 계획을 짜면서 변수를 고려하지 않을 정도로 머리가 고장나진 않았다. 실행일 이전에 조커가 아캄을 탈출하거나, 돌연사로 죽거나, 팀이 먼저 죽거나 등 여러가지 있을 법한 상황을 고려해왔다. 그런데 그 많고 많은 변수 중에 팀 말고 다른 사람이 먼저 조커를 채갈줄은, 예상은 했지만 설마 진짜 누가 그럴거라고는 장담하지 못했던 건데 누가 그걸 해냈다. 다행인 점은 팀이 범행 장소로 계획한 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조커가 납치되었다는 건데, 문제는 납치한 사람이 레드후드였다.
레드후드는 조커를 두고 배트맨과 무슨 거래라도 하려는지 통신 장비를 조작하고 있었다. 팀은 그걸 컴퓨터 화면으로 보며 언제 어떻게 해야 레드후드보다 조커를 먼저 죽일 수 있을지 빠르게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지금 레드후드와 만난다면 조커의 얼굴은 보지도 못하고 병원에 이송될 게 뻔했다. 일단 조커가 납치된 건물로 가고는 있으나 시간과 기회가 될지는 미지수였다.
"안녕, 배트맨. 이제부터 조커가 죽어가는 걸 생중계할거야. 그러니 네 잘난 신념을 위해서라도 서둘러 오는 게 좋을걸. 최대한 천천히 죽이긴 할건데 갑자기 내 마음이 변할 수도 있잖아? 아, 따로 힌트는 없어. 그런거 없어도 항상 잘해왔으니까. 이번에는 '늦지말고'."
"-레드후드! ㄱ,"
레드후드는 일방적으로 통신을 끊었다. 저번에는 데미안이었고, 이번에는 브루스가 레드후드의 도발을 받아들였다. 두 명의 배트맨이 조커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려나? 그 모습을 생각하니 헛웃음이 나왔다. 그건 그렇고, 요즘 레드로빈의 활동이 줄어들고 팀 웨인의 경영 활동만 간간히 들려오던데, 역시 가이드가 없어서 자경단 활동이 어려운 듯 보였다. 레드로빈을 때려눕히고 그를 비웃고 싶었는데. 자신이 죽고 망가진 채로 살아있는 걸 보니 기분이 복잡미묘했다. 제이슨은 헬멧을 벗고 거울 앞에 얼굴을 비췄다. 아까 잠깐 조커한테 맛보기를 보여준다고 쇠지렛대를 이용해 몇 대 때렸더니 그새 조커의 피가 얼굴에 튀어 있었다. 혐오스런 흔적을 물로 씻어 보냈다. 조명때문인가, 묘하게 하수구로 흘러들어가는 물이 녹빛으로 보였다.
여러 일을 겪고 다시 돌아온 고담, 제이슨 토드에게 남은 건 분노뿐이었다. 팀 드레이크에게서 제이슨 토드를 빼앗은 조커에게 복수하기 위하여. 가이딩 능력이라도 돌아왔다면 가족들 앞에 다시 돌아왔노라고 당당히 모습을 드러낼 수 있었을텐데, 뭐가 잘못된건지 죽음에서 돌아온 이후 가이딩 능력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설마, 설마 하는 생각으로 웨인 엔터에 몰래 잠입해서 끙끙거리며 일을 하던 팀에게 접근했지만 돌아온 건 확인사살이었다. 팀이 갑자기 쓰려졌지만 제이슨은 팀에게 아무 도움도 줄 수 없었다. 때마침 사무실에 찾아온 루시우스 폭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만 있었지. 가이딩 능력이 없는 제이슨 토드가 팀에게 필요할까? 차라리 가이드가 아니었다면, 팀을 몰랐더라면 좋았을텐데. 제이슨은 입술을 짓이겼다. 잠깐의 행복은 두 사람에게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남겼다.
"됐어, 더이상은 되돌릴 수 없어. 해야할 일을 마무리짓자..... 그 전에 기어들어온 쥐새끼를 확인해야겠지."
레드후드는 총을 집어들고 화장실에서 나와 조커가 감금되어 있는 방문 문고리를 잡았다. 조커를 구하려고 온 쫄따구인지, 그새 이곳의 위치를 찾아낸 배트맨의 조력자일지, 아니면 그냥 좀도둑일지 여러 정체를 유추해보다가 문을 힘껏 열었다. 제이슨은 조커 앞에 쓰러진 사람을 보고 경악했다.
"씨발, 팀...?!"
"으으....."
조커의 어깨에는 날카로운 단도가 깊숙히 꽂혀 있었다. 근처에 조커가 갖고놀만한 도구들은 전부 치워버렸으니 저 칼은 팀이 가져온 게 확실했다. 아무래도 팀이 조커를 죽이려다가 발작이 와서 칼이 어깨에 꽂히고 그대로 쓰러진 것처럼 보였다. 조커는 신음을 흘리며 여전히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제이슨이 분풀이한답시고 빠루로 조커의 몸을 신나게 내리쳐서 그런지 어깨에 칼이 박히는 고통은 제대로 느껴지지도 않나보다. 약간의 약을 먹이기도 했지만 뭐, 그건 됐고, 팀 드레이크가 왜 여기에 있는지부터 조사해야겠다.
팀의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팔다리를 바르작거리고 말을 제대로 못하는데, 아무리 봐도 가이딩이 부족해서 일어난 발작이었다. 당장 가이딩 약물을 먹이거나 가이드가 그를 진정시켜야하는데, 센티넬이 아닌 제이슨이 가이딩 약물을 갖고 있을 리가 없으며 더군다나 가이딩도 할 수 없다. 제이슨 토드가 할 수 있는 건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발작이 멎기를 기다리는 일뿐이었다. 하지만 연락 수단은 아까 배트맨과 통신 이후 부셔버렸다.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다시 한번 무력함을 느꼈다.
팀은 제이슨을 만나기 전부터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회사일에다 패트롤, 학위 과정 세 개를 동시에 처리하느라 매일매일 가이드 약물을 권장량 이상으로 먹어서 데미안의 말을 빌리자면 '일에 미친 망령'같다고 그랬다. 몸이 좀 피곤한 걸 제외하면 팀의 비상한 머리로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팀은 제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사건을 해결하고, 학문을 탐구하고, 기업 성장에 이바지하고 싶었다. 그럴 능력이 있는데 그걸 사용하지 못한다는 건 너무나 불행한 일이었다. 브루스는 팀을 말리는 건 진작에 포기하고 전세계를 뒤져 팀과 파장이 비슷한 가이드를 찾아나섰다. 그러다 우연히, 크라임 앨리의 골목길에서 제이슨을 찾아냈다. 그러니까, 팀이 홀린 듯 구석으로 걸어다가 제이슨과 마주쳤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그 날, 팀은 잔뜩 경계심 어린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는 청녹색 눈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
이내 발작이 멎고, 팀의 파란 눈이 겨우 움직였다. 죽기 전에 주마등이라도 보는걸까? 팀의 눈 앞에 제이슨이 있었다. 아까는 제이슨과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나더니, 이번에는 미래 모습이네. 팀이 상상하던 모습 그대로 부쩍 자란 제이슨의 모습.
"헉, 헉.... ㅈ, 제이...?"
"....."
"아... 제이, 이리 와 줄 수 있어..?"
겨우 발작이 멎었지만 팀의 상태는 아까보다 나쁘면 나빴지 좋지는 않았다. 호흡이 잘 안되는지 자꾸만 숨차는 소리가 들렸다. 제이슨은 고민하다가 팀에게 다가갔다. 팀은 팔을 벌려 예전에 그랬던 것 처럼 제이슨을 꽉 껴안았다. 역시, 제이슨은 팀에게 가이딩을 해줄 수 없었다. 제이슨은 어색하게 팀을 마주안았다. 팀은 제이슨이 생명줄인 것마냥 껴안은 채로 호흡중이었다. 예전에는 팀을 껴안으려면 팔을 엄청 크게 벌렸어야했는데, 이제는 그냥 무리없이 안아줄 수 있었다. 이렇게 불편한 자세로 있는 것보다 그냥 누워서 배트맨이나 기다리는 게 나을텐데. 제이슨이 팀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자 팀이 조용히 속삭였다. 내가 싫은 건 알지만, 제발 여기 있어달라고.
"...많이 컸네, 제이..."
"...."
"널 볼 수 있어서, 좋아..."
역시 넌 끝까지 아무말도 안하는구나. 나한테 화가 많이 났겠지. 네가 있는 곳은 항상 찾아간다고 했는데 말야. 제이, 널 구하지 못해서 미안해. 대신 조커를 죽여서 복수하려고 했는데, 몸이 이래서 그마저도 못하게 되었어. 한마디만 더 하고 싶은데. 사랑해, 사랑한다고... 머릿속에서 말을 해야한다고 명령을 내리는데 입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겨우 입술만 뻐끔거렸다. 눈 앞의 사람이 정말 제이슨 토드인지, 아니면 팀이 환각을 보는건지 알 수 없었지만 사랑한다는 말은 제대로 전하고 싶었다. 점점 주변 시야가 가물가물 흐려졌다.
"젠장, 팀, 죽으면 안 돼, 제발, 정신 놓지마!"
속내를 전해줄 순 없었지만, 그래도 죽기 전에 다시 듣고 싶었던 그리운 이의 목소리라도 들을 수 있어서 그걸로 만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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